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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은 왜 서울 밖으로 가지 않을까? 문제는 교통이 아니라 ‘연결’일지도 모른다

Gelasio 2026. 10. 16. 07:00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런데 2025년 외국인 관광객의 지역별 방문율을 보다가 눈에 들어오는 숫자가 하나 있었다.

서울 76.8%. 부산은 15.7%, 경기는 11.2%, 제주는 9.7%였다.

 

방한 관광객은 계속 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의 여행지는 얼마나 넓어지고 있을까.

그리고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외국인은 왜 서울 밖으로 잘 나가지 않을까?


처음에는 교통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처음 떠올린 건 교통이었다.

경주, 전주, 안동, 강릉 같은 지역을 생각해보면

외국인에게 보여줄 만한 관광 콘텐츠가 부족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외국인이 지방에 가지 않는 이유는 그곳까지 가는 과정이 어렵기 때문 아닐까 생각했다.

교통 플랫폼에서 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하면서 첫 번째 가설부터 조금 흔들렸다.

한국의 광역교통 인프라는 생각보다 잘 갖춰져 있다.

KTX를 비롯한 철도망이 있고, 고속버스와 시외버스가 전국 대부분의 지역을 연결한다.

외국인을 위한 철도 예약 서비스도 있고 해외카드 결제와 다국어 안내도 계속 확대되고 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내가 찾아본 자료만으로는 ‘외국인이 지방여행을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교통이다’라고 말할 근거가 충분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봐야 했다.

교통수단이 부족한 게 아니라, 외국인이 그 교통수단을 자신의 여행에 연결하는 과정이 어려운 건 아닐까?

 

예를 들어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이 서울에서 속초에 간다고 생각해봤다.

한국인이라면 별로 어려울 게 없다.

기차가 없다는 걸 알고 버스를 찾아 어느 터미널에서 출발하는지 확인한 다음 표를 예매하면 된다.

 

하지만 외국인이라면 기차가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기차가 없다면 다른 이동수단을 찾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고속버스와 시외버스가 나온다.

출발 터미널도 찾아야 하고 예약 서비스와 결제 방법도 확인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이미 학습된 시스템이지만 외국인에게는 처음 접하는 구조다.

여기서 문제를 조금 다르게 볼 수 있었다.

 

Availability보다 Discoverability의 문제에 가까웠다.

 

갈 수 없는 게 아니라, 어떻게 가는지를 알아내는 비용이 높은 것이다.


개별여행객이 늘수록 이 문제는 더 중요해진다

그러다 외국인의 여행 형태를 찾아봤다.

2025년 외래관광객조사 4분기 잠정치를 보면 개별여행(FIT)의 비중이 78.8%였다.

단체여행은 12.1%, 에어텔은 9.2%였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10명 중 8명 가까이가 자신의 여행을 직접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 숫자를 보고 나니 앞에서 생각했던 문제가 조금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패키지여행이라면 여행사가 이동수단까지 정해준다.

하지만 개별여행객은 관광지를 고른 다음 이동수단을 찾고, 시간을 비교하고, 예약하고, 결제해야 한다.

 

FIT가 늘어난다는 것은 단순히 여행상품의 변화만 의미하지 않는다.

여행자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교통 역시 단순한 이동 인프라가 아니라 여행 경험을 구성하는 하나의 디지털 상품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한국도 이미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한국관광공사는 2026년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철도, 공항리무진, 지하철, 버스, 택시 등의 결제정보와 주요 교통 앱 이용방법을 다국어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외국인을 위한 철도 예약이나 해외카드 지원도 계속 개선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영어로 번역한다고 정말 문제가 해결될까?

KTX, ITX, 일반열차, 고속버스, 시외버스, 각종 터미널을 영어로 정확하게 번역해도

처음 한국에 온 사람이 이 구조를 바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Translation과 Localization은 다르다.

 

한국인이 이해하는 서비스를 외국어로 옮기는 것과,

외국인이 별도의 학습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여행 경험을 다시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게다가 교통편 하나를 예약했다고 여행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서울에서 경주까지 KTX를 예약했다고 해보자.

실제 목적지는 기차역이 아니다.

황리단길일 수도 있고 불국사일 수도 있고 보문단지의 호텔일 수도 있다.

역에 도착하면 다시 버스나 택시를 찾아야 한다.

 

결국 외국인이 해결해야 하는 이동은 서울에서 경주까지의 Intercity Mobility만이 아니었다.

역에서 숙소와 관광지를 연결하는 Last Mile Mobility까지 이어져야 실제 여행이 완성된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처음의 ‘교통이 문제 아닐까?’라는 질문이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런데 교통이 아무리 편해져도 안 갈 사람은 안 가지 않을까?

여기서 스스로 반론을 하나 던져봤다.

외국인이 한국에 4박 5일 일정으로 왔다고 생각해보자.

 

경복궁도 가고 싶고, 명동도 가보고 싶다. 성수와 홍대도 궁금하고,

강남이나 한강도 가보고 싶을 수 있다.

서울 안에서만 해도 할 일이 많다.

 

그런 사람에게 하루를 사용해 경주나 전주로 이동하는 것은 단순히 KTX 예약이 편한가의 문제가 아니다.

경주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선택한다는 것은 서울에서 보낼 수 있는 하루를 포기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Opportunity Cost다.

이렇게 생각하니 지방관광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꼭 다른 지방도시인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서울일 수 있었다.

 

아무리 교통 예약을 쉽게 만들어도 지방에서 보내는 하루가 서울에서 보내는 하루보다 매력적인 선택지로 보이지 않는다면 관광객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다시 콘텐츠 문제로 돌아가는 걸까?

그런데 그것도 조금 이상했다.

경주에는 신라의 문화유산이 있고, 전주에는 한옥과 음식이 있다.

안동에는 하회마을이 있고 강릉에는 바다와 커피문화가 있다.

 

정말 외국인에게 보여줄 게 없는 걸까?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질문이 하나 더 생겼다.

관광지가 부족한 게 아니라, 외국인이 그것들을 하나의 여행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놓지 못한 건 아닐까?


일본을 찾아보다가 ‘교통’보다 ‘Route’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일본은 어떤지 찾아봤다.

처음에는 철도 시스템을 비교해보려 했다.

그런데 조사하다 보니 내 눈에 들어온 건 철도가 아니었다.

 

외국인에게 일본의 Tokyo → Kyoto → Osaka는 아주 익숙한 여행 루트다.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여러 도시를 이동하는 일정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Japan Rail Pass뿐 아니라 홋카이도, 간사이, 규슈 등 지역별 Rail Pass도 이런 이동을 뒷받침한다.

 

물론 일본이라고 모든 지역 교통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일본 역시 지방의 캐시리스 결제, 교통카드 호환, 다국어 안내 같은 문제를 계속 개선하고 있다.

 

내가 흥미롭게 본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여러 도시를 이동하는 여행 방식 자체가 하나의 상품처럼 이해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한국을 대입해보게 됐다.

 

Seoul → Jeonju → Gyeongju → Busan.

 

이 일정은 Tokyo → Kyoto → Osaka만큼 외국인에게 직관적인 한국 여행의 대표 루트로 인식되고 있을까?

이 질문을 던지고 나니 지금까지 찾아봤던 것들이 하나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한국에는 관광지가 있다. 도시를 연결하는 철도와 버스도 있다. 숙박시설도 있고 액티비티도 있다.

그런데 관광지는 관광지대로 홍보하고, 철도와 버스는 따로 판매하고, 숙박과 액티비티 역시 각자의 서비스에서 검색한다.

 

공급자의 입장에서는 각각의 상품이 존재한다.

하지만 여행자에게는 전부 하나의 여행이다.

 

어쩌면 한국 지방관광에 부족한 것은 교통수단이 아니라 Route,

그리고 그 Route를 여행으로 만들어주는 Connectivity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PM의 관점에서 다시 보니 하나의 Funnel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내가 익숙한 방식으로 문제를 다시 정리해봤다.

 

외국인이 경주를 여행하는 과정을 하나의 Funnel로 보는 것이다.

 

Awareness → Consideration → Discovery → Booking → Payment → Intercity Mobility → Last Mile → Experience

 

먼저 경주라는 도시를 알아야 한다.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고, 서울에서 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교통편을 예약하고 결제한 뒤 실제로 경주까지 이동해야 한다.

그리고 도착해서 다시 숙소와 관광지까지 이동해야 비로소 여행이 시작된다.

 

이렇게 놓고 보니 각 산업이 해결하고 있는 영역도 보였다.

관광정책은 좋은 관광지를 만들고 해외에 알리는 Awareness와 Experience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교통정책은 철도와 버스 같은 Mobility를 개선해왔다.

 

그런데 그 사이에 Discovery → Booking → Payment라는 구간이 있다.

여행 플랫폼과 교통 플랫폼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예를 들어 외국인 여행자가 서울 숙소를 예약하고 이틀 뒤 경주 숙소를 예약했다고 생각해보자.

플랫폼은 이미 이 사람이 서울에서 경주로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다음 상품은 또 다른 호텔 할인쿠폰이 아니라

서울에서 경주로 이동하는 열차와 경주역에서 숙소까지 가는 방법일 수 있다.

 

더 나아가 숙박, 교통, 관광지, 액티비티를 각각의 카테고리로 보여주는 대신

‘서울에서 출발하는 경주 2박 3일 여행’이라는 하나의 Journey로 연결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국내 교통은 여행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여러 카테고리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여행의 각 조각을 이어주는 연결 인프라에 가깝다.


이제는 ‘몇 명이 왔는가’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

2026년 10월에는 외국인 관광객의 지역 이동을 지원하기 위한 ‘K-투어 패스’가 부산에서 시범 출시됐다.

부산행 철도·버스 등 광역교통 할인과 코레일패스, 공항철도 할인 등을 하나의 패스에 묶은 상품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할인상품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료를 찾아본 뒤 다시 보니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외국인에게 지역을 홍보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실제로 지역까지 움직이는 과정 자체를 관광정책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신호처럼 보였다.

 

지금까지 한국 인바운드 관광의 중요한 목표는 ‘얼마나 많은 외국인을 한국으로 데려올 것인가’였다.

그런데 방한 관광객이 2천만 명을 넘어 3천만 명을 바라본다면 이제 다음 질문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에 온 관광객을 어디까지 움직이게 할 것인가?

서울에 외국인 한 명을 더 데려오는 것과

이미 한국에 들어온 관광객이 경주나 전주에서 하루를 더 보내게 만드는 것은

지역경제의 관점에서 다른 의미를 가진다.

이동하면 교통 소비가 발생하고, 숙박과 음식, 쇼핑과 액티비티 소비도 따라온다.

 

그래서 앞으로 한국 관광에서 입국자 수만큼 중요하게 봐야 할 숫자는

관광객이 어느 지역까지 이동했는지,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 그 과정에서 지역에 얼마나 많은 소비를 남겼는지일지도 모른다.

 

처음 이 글을 쓰려고 했을 때 나는 외국인이 지방으로 가지 않는 이유를 교통에서 찾으려고 했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갈수록 질문이 달라졌다.

 

교통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KTX 한 편을 늘리거나 예약 화면을 영어로 바꾸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었다.

관광지를 발견하고, 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이동 방법을 찾고,

예약하고, 결제하고, 도착한 뒤 실제 관광지까지 이동하는 과정이 하나의 여행으로 이어져야 했다.

 

한국에는 이미 경주도 있고 전주도 있고 안동도 있고 강릉도 있다.

이들을 연결하는 철도와 버스도 상당 부분 갖춰져 있다.

 

어쩌면 부족한 것은 새로운 관광지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관광지와 교통을 외국인이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여행으로 만들어주는 연결일지도 모른다.

 

외국인 관광객 3천만 명 시대의 다음 경쟁력은 더 많은 사람을 공항까지 데려오는 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 도착한 사람을 서울 밖으로 얼마나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할 수 있는가.

 

처음에는 교통을 들여다봤는데, 결국 내가 발견한 문제는 교통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

한국 관광의 다음 숙제는 어쩌면 ‘더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들을 더 잘 연결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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